고등학생 때 정도였던 거 같다.
그 때 드라마를 보면 회사원은 멋진 슈트를 입고,
하는 일도 멋있게 보였었던 거 같다.
그런 로망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이어졌다.
종종 회사설명회에 왔던 선배들도 멋있어 보였다.
그러나 회사에 막상 들어가니 슈트는 입지 않았다.
그리고 일도 그리 멋지지 않은 것 같다.
벌써 만 16년이 넘게 다니고 있다.
회사 가는 길은 고속도로를 타고
한적한 논밭을 지나면 나온다.
그래서 보통 자동차를 이용해서 출퇴근한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항상 비슷한 시간에 회사에 오면 하루가 시작된다.
그러다 종종 술 마실 일이 있으면 차를 두고 간다.
그러면 그 다음날 집 근처를 지나는 회사 통근 버스를 탄다.
오늘도 회사 버스를 타러 가는 길이었다.
버스를 기다리다 보니 배 속이 심상치 않다.
회사버스를 타면 고속도로를 타고 한 참을 가야 하는데, 배 아픔을 참지 못 할 거 같다.
죽음까지 이르는 몇까지 고통 중에,
'똥마려 죽겠네'가 눈 앞에 선했다.
회사는 멀었는데 배는 찢어지듯 아프고,
똥꼬에 힘을 주면 바들바들 몸이 떨리던 그 고통의 시간과,
버스 기사 아저씨한테 세워달라고 할까말까를 수없이 나한테 되묻는 진리탐구의 시간을 버텨야 한다.
그리고 똥꼬에 비집고 나오는 방구가 똥과 함께 배출 될 지도 모른다는 간박함과 초조함까지 오로지 내가 견뎌 내야 한다. 오 주여...
그래서 회사 버스를 눈 앞에서 보내 버렸다.
휴대폰을 들어 일이 있어 조금 늦는다고 메신저를 보낸다. 이제 만물의 근심을 해결할 차례이다.
근처 상가 건물의 화장실을 찾아 화장실을 간다.
그리고 어제 먹은 고칼로리 안주를 배설한다.
몸의 배설은 신비로운 작용을 한다.
눈물은 슬픔이라는 감정까지 함께 배설하고,
급똥은 고통을 함께 배설한다.
그 고통을 죽음에 비교할 정도이니 그럴만하다.
이 모든 근심을 해치우니 갑자기 행복하다.
회사 가는 시내 버스를 타면 된다.
버스장류장에 걸어갔고, 버스를 기다리고, 버스에 승차해서 주변 경치를 살핀다. 동네들이 보이고 버스를 타고 내리는 사람들도 보인다.
오전이라는 시간에 이런 곳을 봤던 기억이 언제였던가 싶다.
내가 항상 다니던 익숙한 곳이 이렇게 어색할 수가 없다. 낯선 곳을 돌아다니는 행위가 되었다. 바로 여행. 소소한 여행인 소풍.
난 지금 소풍을 즐기고 있다. 차 밖을 바라보고, 차 안의 사람들을 바라보고,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에 눈을 찡그리다가도 그 햇살이 세상을 더 예쁘게 만들어 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란색은 더욱 파랗게, 흰색은 더욱 하얗게.